회기역에서 경희대로 가는 길목에 열쇠집 두 군데가 있다.
한 곳은 구청에서 승인받은 깨끗하고 정갈한 컨테이너형 열쇠집,다른 한 곳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펼쳐 놓은 허술한 노점형 열쇠집,
하루는 안방의 예비 열쇠가 필요해서 열쇠집을 찾다가 두 열쇠집 중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여러 가지 판단 끝에 아무래도 깨끗하게 정리된 컨테이너형 열쇠집이 사람도 많이 찾을 것 같고, 왠지 더 신뢰 갔다.
그곳 아주머니께서는 복사할 원본 열쇠를 실눈으로 매섭게 노려보며,“이 열쇠는 이미 복사된 열쇠라서 다시 복사를 해도 제대로 안 열릴 수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 없고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일단 복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복사한 열쇠로 방문을 열어보았다. 역시나 아주머니의 말대로 복한 열쇠로 문이 안 열렸다. 아쉬운 마음에 그 열쇠집에 다시 가서 복사를 해봤지만 아주머니의 반응은 똑같았고, 결과도 똑같았다.
그리고 한 달간 열쇠 복사를 포기하고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은 열쇠마저 잃어버려서 더 이상 예비 열쇠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 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허름한 노점형 열쇠집을 찾았다. 장비들은 녹슬어 제대로 돌아가나 의심됐고, 허름한 장소에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열쇠뭉치들을 보고 큰 기대는 안 했다. 일단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잘 복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대뜸 나를 흘겨보더니,“내가 하면 무조건 열려, 열쇠 깎는 사람이 열쇠가 열릴지 안 열릴지 확신도 못하면서 깎으면 안 되지!”'라고 도리어 나를 다그쳤다. 아저씨의 자신만만한 말투에도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래도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돌아와 복사한 열쇠로 문을 열어본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다시 생각났다.
그날은 허술한 열쇠집 아저씨에게 한 수 배웠다. 전문성의 기준은 외관이나 외모가 아니라 자신의 일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었다. 내가 나의 일에 자신감과 신념이 없다면 그 일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전문성은 외관에서 뿜어져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해들... 전문성은 전문성이라 쓰고 자신감과 신념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