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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

현실 사람의 화해법: 화의 온도 180도

REAL LEE 2019. 6. 2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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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지 않으면 정말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냥 그렇게 시원하게 속에 있는 불덩이를 질러버리고 나면 내 마음은 후련해지고 기분이 더 나아질 것 같다고 느끼는 날이 있다. 그러나 불덩이가 떨어져 나온 가슴은 어김없이 딱 그만큼의 공허함이 남는다.

    

그때도 그런 날이었다. 친한 후배가 소개팅을 해달라고 여러 번 졸라댔다. 나는 몇 번이나 형식적으로 알았다고만 말하고 별다른 진행을 하지 않고 있던 중에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여자가 생각나서 후배에게 소개해주게 됐다. 그 여자 사진을 보여주고, 칭찬을 늘어놓으며 소개받아보라고 권유했다. 

 

     

“형님, 그런데 그 여자 종교는 뭐예요?”

“키는요? 혹시 부모님은 뭐하세요?”

 

     

“나도 잘 몰라...”

 

      

처음에는 후배를 위하는 마음에 기분 좋게 소개팅 주선을 자처했지만, 까다로운 후배의 요구에 스스로 중매쟁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갑자기 찝찝해졌다. 그래도 둘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이야기를 꺼낸 김에 두 사람이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권유 끝에 그 둘은 그 주 주말에 소개팅을 했다. 

     

사실 후배보다 여자가 더 아까웠다. 여자는 세련된 외모에 나이도 어리고, 직업도 그 후배보다 훨씬 좋았다. 그러나 남녀 간의 호감과 사랑에는 이런 일반적인 지표나 공식들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진 않았다. 후배에게 몇 번 더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후배의 싸늘한 반응이었다. 

 

    

“아니 맘에 안 든다니까 왜 자기가 시켜주고 귀찮게 그래요.”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비난이었다. 선하고 그 후배를 위하는 마음에 주선을 해줬지만 잘 안됐을 때는 결국엔 내 탓이었다. 나는 그것까지 감수할 준비는 안돼 있었다. 후배에게 서운했지만 그것을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본인이 맘에 안 든다는데 어쩌랴...      

 

며칠 뒤에 그 후배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형님! 형님 친구 중에 고등학교 선생님 있으시죠? 그분 소개해주시면 안 되나요?”     

 

 

그 워낙 친한 친구여서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난번 소개팅에서 잘 안됐을 때의 기억이 남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후배가 되물었다.     

 

 

“아.. 형님, 그때는 아무나 소개해주신 거죠?”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고, 참지 못해 그 후배에게 안에 있는 화를 뱉어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인상을 쓰면서 소리 지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퉁명스럽게 이야기하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도 화를 내는 방식 중에 하나다.     

 

물론, 나는 서운함 표현한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인상 쓰면서 화낸다고 느꼈을 수 있다. 사람마다 화를 내는 방식이 다르듯 화를 받아들이는 것에도 그 온도차가 확연하다. 그 뒤 후배와 나 사이는 멀어졌다. 둘 사이에는 다가가지도 넘지도 못할 공간이 내가 화냈던 그만큼 생겼다.     

 

 

화라는 것이 무섭다. 소중한 것을 잃게 할 수고, 상대방의 마음을 180도 변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가 화를 내는 방법을 배웠듯이 화를 통제하고, 화낸 뒤에 잘 풀 수 있는 방법도 충분히 배울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미안해.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소개해줬던 만큼 서운함이 컸던 것 같아. 당시에 내 감정들도 예민해 있었고, 너를 안 좋게 생각하거나 미워하지 않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담아두고 꺼내지 못했던 미안함을 겨우 후배에게 전했다. 

 

후배의 잘못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롯이 나의 행동과 감정에 집중해서 내가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후배는 커피를 사들고 나를 찾아왔다.

 

사실 그 후배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는 가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미안함을 전하니 내 가슴에 뻥 뚫려버린 공허함이 어느 정도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화라는 것이 그랬다. 낼 때는 시원하고,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질러버릴 수 있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사과하는 데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고,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몇십 혹은 몇백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화의 온도는 180도만큼이나 뜨겁다. 그리고 화낸 뒤 관계의 거리는 180도만큼이나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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