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작가를 찾았다. 후배가 추천해준 작가다. 그 작가의 글은 문자들이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고 그 글자는 처음에는 머리, 나중에는 가슴을 후벼 판다. 글을 읽고 난 뒤의 여운은 상당히 길었다. 외국 작가들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특유의 한국식 표현 방법 때문에 글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이상한 작가. 한강이다.
베스트셀러 <채식주의자>의 저자 한강이 신작소설 '흰'을 출간했다. 한강이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게 해 준 책이 <채식주의자>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렇게 늦게서야 주목받게 된 계기는 바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노벨문학상과 프랑스 콩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권위있고 영예로운 상이다. 우리나라가 맨부커상을 수상받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 자부심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했다.처음에 그런 호기심으로 시작되어 나중에는 엄청난 필력이 입소문을 타 지금은 베스트셀러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왼쪽이 우리가 익숙해있는 채식주의자의 표지이고 오른쪽이 영국의 번역본 표지다.
그리고 아래는 또 다른 번역본의 표지다. 날개.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날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내용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 후 사진이다.
왼쪽이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 그리고 이 번역가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흰>도 번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한강 작가의 풍부한 표현력과 직관력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식으로 표현된 감정과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해서 영어로 풀어쓰는 스미스도 대단한 것 같다.
이렇게 흰은 한강이 세상의 주목을 한 껏 받은 상황에서 새로이 출간된 책이다. 물론, <채식주의자>에서 보여준 작가 특유의 어둡고 의식의 흐름을 표현하는 기법과 불편한 소재는 어떤 사람에겐 불편함으로 다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흰>을 읽을 때는 마음이 불편해지다가도 사색에 빠지고 참신한 표현기법에 즐거움을 느끼다가 인생의 무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흰>은 '흰'에 대한 여러가지 소재로 씌어진 책이다. 흰 돌, 흰 개, 짓눈깨비 등 흰색으로 구별되는 수십가지의 주제들이 이 글의 소재이다. 자칫 하나의 소재에 대한 에쎄이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런 소재들이 모여 큰 그림을 이뤄 소설이 된다. 이렇게 <흰>은 흰색을 중심으로 작가의 생각과 과거의 일화 그리고 지금 머무르고 있는 나라 폴란드의 모습을 적어내려갔다.
사실 얇아서 정말 가볍게 집어든 사람들은 두 세 장 읽어가면서 소설의 무게감에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흰'이라는 가벼운 색깔은 가슴으로 와 닿아 무거움으로 전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책의 무게는 두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고뇌와 그 생각을 한자 한자 얼마나 강한 힘으로 꾹 눌러 적어 내려갔는 지로 정해지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사실 흰 개, 배넷과 같이 죽음에 관한 소재가 대부분을 이루지만, 이와 대비되는 죽음에 맞서 생명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극명이 대비 되면서 더 큰 감동의 여운을 준다.
' 의식 없는 상태로 아기가 젖을 물고 조금씩 삼켰다.
점점 더 삼켰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넘어오고 있는 경까 무엇인지 모르는 채'
- 한강 신작소설 <흰> 중에서 -
역시, 한강의 소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읽고 난 뒤에도 그 소설의 표현 기법이 떠오르고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흰>의 외관은 흰색의 깃털처럼 가볍지만 그 안에 답긴 글들은 그 무게는 수의보다 무거웠다. 흰색의 종이에 꾹 꾹 눌러 적어 내려간 글자들은 흰색 종이의 가치를 더했다.
역시 정말 이상한 작가다.
그녀의 다음 작품도 정말 기다려진다.